<라마나 마하르시쉬(1879년 12월 30일 ~ 1950년 4월 14일)>


마음공부의 입문에서 마하리쉬와 같은 성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동시에... 마하리쉬에게 옷깃을 붙들리면 그 또한 불운이다.


이제까지의 글 중에서 삼일사상을 이해하였다면 아래 소개하는 마하리쉬의 주옥같은 '말씀' 중에서 마음과 의식을 섞어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구분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단언컨데... 당신은 한꼭지를 넘어서 일원적 세계관인 삼신의 세계에 확실히 당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경계에 붙들리지 마시라.

넘어... 넘어... 또 넘고 넘어 자유로이 길(道)을 가야한다.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 처럼... 그리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한다.

길을 가는 도중에 '위대한 스승들'에게 자빠져서 언제까지 경배하고 찬송하며 시간을 허비할텐가?

(농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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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누구입니까?

일곱 가지 기질로 이루어진 이 거친 몸은 내가 아닙니다. 소리를 듣고, 감촉을 느끼고, 색을 보고,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다섯 가지 지식 기관은 내가 아닙니다. 말을 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행위 기관은 내가 아닙니다. 호흡 등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쁘라나 등 다섯 가지 생명 기운은 내가 아닙니다.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내가 아닙니다. 대상에 대한 잔류 인상만 지니고 있을 뿐, 아무런 대상도 아무런 기능도 없는 무지 또한 내가 아닙니다.

 

 

2. 이것이 다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두 이것도 아니다라고 부정한 뒤에 단 하나 남는, ‘나는 존재한다’(I am) 하는 자각(Awareness)입니다.

 

3. 그 자각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 자각의 본질은 존재-의식-지복입니다.

 

4. 언제 진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보이는 대상인 이 세계가 사라졌을 때, 보는 자인 진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5. 세계가 (실재한다고 여겨져) 눈앞에 존재하는 동안에도 진아를 깨달을 수는 없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6. 왜 그렇습니까?

보는 자(진아)와 보이는 대상(세계)은 밧줄과 뱀의 경우와 같습니다. 환인 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탕인 밧줄에 대한 앎이 일어날 수 없듯이, 세계가 실재한다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탕인 진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7. 보이는 대상인 세계는 언제 사라집니까?

모든 인식과 모든 행위의 원인인 마음이 가라앉을 때, 세계는 사라집니다.

 

8. 마음의 본질(swarupa)은 무엇입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진아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불가사의한 힘입니다. 그것이 모든 생각을 일으킵니다. 생각과 별개인 마음 같은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곧 마음의 본질입니다. 생각과 별개의 독립된 실체로서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고, 따라서 세계도 없습니다. 생시와 꿈의 상태에서는 생각들이 있고, 따라서 세계도 있습니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몸 안으로 거두어들이듯이, 마음도 자신의 밖으로 세계를 투사했다가 그것을 다시 자신의 안으로 흡수합니다. 마음이 진아 밖으로 나올 때 세계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세계가 (실재하는 것으로) 보일 때 진아는 나타나지 않고, 진아가 나타날 때(빛날 때) 세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해 들어가면 마음은 진아만 남겨놓고 소멸됩니다. 여기서 진아라는 것은 바로 아뜨만(atman)입니다. 마음은 항상 어떤 거친 것(육체, 세계 따위)에 의존해서만 존재하며, 홀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묘한 몸이나 영혼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마음입니다.

 

9.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길은 무엇입니까?

이 육체 안에서 라는 것으로서 일어나는 것이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라고 하는 생각이 몸 안의 어디서 처음 일어나는지를 탐구하면, 그것이 심장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 ‘를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곳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 중에서 라는 생각(‘I’-thought)이 첫 번째 생각입니다. 다른 생각들은 이 라는 생각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납니다. 1인칭 대명사가 나타난 뒤에야 2인칭, 3인칭 대명사가 나타납니다. 1인칭 대명사 없이는 2인칭, 3인칭 대명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10. 어떻게 하면 마음이 가라앉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에 의해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시킨 뒤에, 화장터의 장작불을 쑤시는 막대기처럼 마지막에는 그 자체도 소멸됩니다. 이때 거기서 진아 깨달음(Self-realization)이 일어납니다.

 

11.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착파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하고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하고 꾸준히 물어야 합니다. 이때 나오는 답은 나에게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해 들어가면, 마음은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일어났던 생각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수행해 나가면 마음은 그 근원에 머무르는 법을 스스로 익히게 됩니다.

 

이 미묘한 마음이라는 것이 두뇌와 감각 기관을 통해 밖으로 나갈 때, 거친 이름과 형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장 안에 머무르면, 이름과 형상들은 사라집니다.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심장 안에 붙들어 두는 것이 안으로 향하기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심장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밖으로 향하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마음이 심장 안에 머무르면, 모든 생각들의 원천인 가 사라지고 항상 존재하는 진아가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라는 에고성 없이 그것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행위하면 일체가 쉬바[]의 성품으로서 나타날 것입니다.

 

12. 마음을 가라앉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탐구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보면, 마음이 다스려진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 호흡 제어를 통해서도 마음은 가라앉지만, 그것은 호흡이 제어되는 동안만 그러할 뿐입니다. 호흡을 되돌려 놓으면 마음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여, 잔류 인상(원습)들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마음과 호흡은 근원이 같습니다.

 

사실 생각이 마음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라는 생각이 마음이 일으키는 최초의 생각인데, 이것이 에고성입니다. 에고성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호흡도 시작됩니다. 따라서 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제어되고, 호흡이 제어되면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잘 때에는 마음이 가라앉아도 호흡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때에도 육체가 유지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육체가 죽었다고 오인하지 않도록 하려는 신의 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생시와 삼매의 상태에서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제어됩니다. 호흡은 거친 형태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죽음의 순간까지 육체 안에서 호흡을 유지하다가, 육체가 죽으면 떠나면서 호흡을 가지고 가 버립니다. 따라서 호흡 제어의 수련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편일 뿐, 마음을 사라지게하지는 못합니다.

 

 

호흡 제어의 수행과 마찬가지로, 신의 형상에 대한 명상이나 진언의 암송, 음식의 절제 등은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신의 형상에 대한 명상이나 진언의 염송을 통해서 마음은 일념으로 집중됩니다. 마음이란 항상 헤매기 마련입니다. 코끼리의 코에 사슬을 하나 쥐어 주면 그것을 코로 집느라고 코끼리가 딴 짓을 하지 않듯이, 마음도 하나의 이름이나 형상에 몰두하면 그것 하나만 붙들게 됩니다.

 

마음이 무수한 생각들로 분산되면 하나 하나의 생각은 그 힘이 약해지지만, 생각들이 해소되면 마음은 일념이 되어 강해집니다. 이러한 마음이 되면 자기탐구가 쉬워집니다. 절제하는 규칙 중에서는, 순수성 식품을 적당량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 규칙을 지키면 마음의 순수성이 증장되며, 그것은 자기탐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3. 대상에 대한 잔류 인상[생각]들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끝없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생각들은 언제나 없어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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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에 대한 명상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그 생각들은 소멸될 것입니다.

 

14. 말하자면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계속되어 온 이 대상에 대한 잔류 인상들이 모두 해소되고, 우리가 순수한 진아로 남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까를 따지지 말고 진아에 대한 명상을 끈덕지게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설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 나는 죄인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구원받겠는가?’ 하면서 걱정하고 비통해 하면 안됩니다. ‘나는 죄인이다하는 생각을 완전히 놓아 버리고 진아에 대한 명상에 예리하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두 가지 마음, 즉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은 잔류 인상들입니다. 즉 좋은 인상들과 나쁜 인상들이 그것입니다. 마음이 좋은 인상들의 영향하에 있을 때에는 선이라 하고, 나쁜 인상들의 영향하에 있을 때에는 악이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세속적인 대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관심 갖는 그런 문제에 쏠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세속적) 욕망과 증오심은 둘 다 피해야 합니다. 자기가 남들에게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진리를 이해한다면 누가 남에게 베풀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자아(self-에고)가 일어나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자아가 가라앉으면 모든 것이 가라앉습니다. 우리가 겸허하게 처신하면 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15. 탐구는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해야 합니까?

 

마음속에 대상에 대한 인상들이 남아 있는 한,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가 필요합니다.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 탐구를 통해 그것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진아를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진아에 대한 내관을 밀고 나가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요새 안에 적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은 계속 공격해 오겠지만, 그들이 나타나는 족족 없애 버리면 요새는 결국 우리의 수중에 떨어질 것입니다.

 

16. 진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진아뿐입니다. 세계, 개인적 영혼 그리고 신은, 마치 진주모(mother-of-pearl)의 은과 같이, 진아 안에서 나타나는 겉모습들입니다. 이 셋은 동시에 나타났다가 동시에 사라집니다. 진아는 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바로 그곳입니다. 그것을 침묵이라고 합니다. 진아 자체가 세계이고, 진아 자체가 이며, 진아 자체가 신입니다. 일체가 쉬바이고, 진아인 것입니다.

 

17. 일체 만물은 신의 작품 아닙니까?

 

아무런 욕망도, 의지도 노력도 없이 태양은 떠오르는데, 단지 태양이 떠 있기만 해도, 일장석(sunstone)은 화기를 뿜어내고, 연꽃은 개화하며, 물은 증발하고,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고 나서 휴식합니다. 자석 앞에서 바늘이 움직이듯이, 세 가지 (우주적) 작용 또는 다섯 가지 신의 활동에 의해 지배되는 영혼들은 그들 각자의 업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하고 휴식합니다. 신은 아무런 의지도 없으며, 아무런 업도 그에게 붙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 만물의 활동이 태양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고, 다른 4대 원소들의 성질이 일체에 두루한 에테르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 지성의 전당 2018.06.11 21:43 신고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7876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기본적 자기 정의로 전제하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의 의문을 해결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전제로서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먼저 해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누구이기는 한 걸까?
    정말 ‘나’는 무엇이기나 한 걸까?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이것이 정말 ‘나’일까?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해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해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나는 누구인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출처 : 불멸의 자각

    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